2012년 3월 3일 토요일

바울의 겸손과 담대함


Paul an apostle--not from men nor through man, but through Jesus Christ and God the Father

구절에는 바울의 강한 열정과 단호함이 담겨 있다. 크리소스톰이 지적한 것처럼 목소리와 뜨거운 가슴을 쏟아내야 때에 유순한 말로 가르치는 것은 교사의 직무가 아니라 부패한 원수들의 일이다. 그러나 제롬의 경계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사람을 통한 것도 아니며, 오직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님 아버지를 통해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바울의 고백은 교만과 자랑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불가피성 때문에 언급된 것이다. 신적 기원을 가진 자신의 사도성을 강하게 선언한 것은 사적인 유익의 방편이 아니라 진리의 바른 가르침과 교회의 건강한 성장을 위한 필요에 부응한 고백이란 뜻이다.

여기에 어거스틴의 신중한 통찰도 더해질 필요가 있다. 진리의 복음을 증거하는 부르심을 받은 것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또는 사람을 통하여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하여서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땅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것과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의 진정성은 사람에게 찾아서는 안될 것이다. 사람을 통하여서 입증되는 것도 아니어야 한다. 주님만이 보증한다.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자로서의 정체성은 최고의 권위와 확신인 동시에 주님만이 증인이란 사실에서 극도의 외로움이 수반되는 성격도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너무 부정적인 시각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이다. 그러나 외로움은 보다 높은 가치에 이르는 관문의 성격이 강하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보다 신령하고 깊은 은혜에 합당한 자들을 걸러낸다. 마치 기드온의 군사가 엄선되는 과정에서 300명의 정예부대로 구성된 것처럼 말이다. 외로움을 정서적 피해나 사귐의 반대편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기면, 한글의 잘못된 뉘앙스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다. 외로움은 모든 차원이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지기 위한 빈공간을 의미한다. 외로움이 다른 사람들을 부요하게 한다.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광과 동등됨을 거절하고 땅에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아버지의 차가운 버림까지 받으시며 죽음의 길을 가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처참한 외로움, 그러나 그것이 많은 자들에게 생명과 기쁨과 소망과 치유를 주는 원천이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사람들이 걸어가는 외로움의 길이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기에 결코 외롭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바울은 얼마나 매를 많이 맞았는지 모른다. 죽을 뻔한 일들이 또한 얼마나 많았는가! 복음을 증거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은 자들의 감사와 대접은 고사하고 주님께로 말미암은 자신의 정체성과 권위까지 부정하고 대립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주는 외로움을 얼마나 많은 자들에 의해 얼마나 오래동안 견뎌야 했는가! 그렇게 하면서도 바울은 불평을 토하기 이전에 자신은 그리스도 예수와 그의 십자가만 자랑하고 알기로 작정을 했단다. 사실 이는 참으로 지혜로운 판단이다. 삼천층의 경험, 삼년간의 광야교육, 정말 희귀한 능을 행한 등등을 생각하면 바울의 높아짐은 생명의 근원되신 그리스도 예수의 가려짐과 이어져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바울은 높아지면 안되는 사람이다. 우리도 동일하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낮아져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높아짐의 유익을 많은 자들에게 전하는 방법은 내가 낮아지고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기를 비하하고 보잘 없는 자로 여기라는 말이 아니다. 바울의 단호한 신분 선언을 들어보라.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사도의 신분과 정체성을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 분명히 알리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다. 겸손과 담대함은 어느 하나라도 희생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바울처럼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스도 예수의 되신 것과 이를 위하여 나는 모든 사람에게 종된 것이 담대히 증거되는 구체적인 표현이 1 1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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