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17일 금요일

아들과의 대화 2

오늘도 아들을 태우고 학교로 핸들을 돌렸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타자마자 내가 먼저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아빠: 아들아, 아빠가 오늘은 예수님이 죽으신 장면을 읽었단다. 많은 생각이 들더구나.

아들: 아빠, 그런대요~ 예수님이 아프시고 슬퍼하고 죽으시는 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야기와 비슷한 것 같아요. 거기에 보면 신들이 화내고 싸우고 죽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잖아요.

아빠: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 사실 비슷하지. 그런데 예수님은 그리스 신화의 신들과는 달리 완전한 사람으로 오셨단다. 죄 말고는 우리와 하나도 다르지 않으시지. 그리고 걔네들은 그리스 사람들의 힘샌 아바타에 불과해. 그렇다고 예수님도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의 아바타로 보면 안되는 거 알지?

아들: 그런데 아빠, 창세기에 보면 사람들이 죄를 짓고 타락한 것을 하나님이 보시면서 후회도 하잖아요. 그때는 사람으로 오신 것도 아닌대.

아빠: 물론 그렇지.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몸으로 오시기 전에도 우리에게 늘 가까이 오셨고 가까이 계셨단다. 구약에서 관찰되는 하나님이 마치 그리스 신들처럼 보이는 것은 사랑 때문에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고 소통하신 방식이기 때문에 비슷한 것이지 본질은 전혀 다르단다. 하나님은 몸으로 오시기 전에도 우리에게 가까이 계셨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오실 때에 전혀 새로운 계시를 보이신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게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는 하신 거란다.

아들: 아빠, 이것도 궁금해요. 하나님은 모든 것을 계획하고 모든 것을 아시는데, 왜 슬퍼하고 후회하고 우시고 그러세요?

아빠: 네가 말한대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계획하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란다. 그런데도 마치 몰랐던 것을 알고 경험하신 것처럼 인간적인 감정을 보이시는 게 이상할 수 있겠구나. 아들아, 성경을 자세히 보면 늘 두 가지가 동시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단다. 세상을 창조하신 동시에 그것을 다스리고 계시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명령의 방식으로 전달하신 동시에 그것에 대한 사람의 반응에 일일이 개입하며 소통하고 계시다는 것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늘 가까이 하시는데 당신의 마음과 뜻을 전달함에 있어서는 명령만 덜렁 던져 주지 않으시고 그것에 대한 우리의 마음과 행실을 일일이 살피면서 그것에 대해 반응을 해 주시므로 더 깊은 소통의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거란다. 슬퍼하고 후회하고 우시는 건 하나님이 무능하고 무지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 능하시고 모든 것을 아시지만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기 위해 그렇게 하셨다는 얘기지. 지금은 다 알지 못하겠지. 아직 어리니까 괜찮다. 말이 길었지만 한 마디만 더 해줄께. 그리스 신화가 있다고 해서 우리의 하나님은 무조건 그것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지나친 반응일 수 있단다. 그리스 신화가 구약에서 보여진 하나님의 모습을 카피했을 수도 있거든. 일종의 페러디일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지. 진짜 주변에는 늘 가짜가 많은 법이거든.

아들: 아빠, 이건 조금 다른 얘긴데요. 모든 것을 계획하신 하나님이 왜 아담과 하와를 타락하게 하셨어요? 하나님은 죄를 좋아하시는 거 아니예요? 좋아하지 않는다면, 전능하신 분이신대 다르게 계획하실 수 있는 거잖아요.

아빠: 오늘은 은진이가 질문이 많구나. 답변이 곤란해서 그런 게 아니라 너무 많은 얘기를 들으면 소화하지 못할까 걱정이 되는구나. 아주 간단하게 두 가지로 답한다면 이렇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시되 마치 하나님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을만큼 고매하게 만드셨고 우리의 가치를 그런 차원까지 높이셨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가 죄짓는 것까지도 허용하신 거란다. '허용'이란 말이 어렵지? 아담과 하와의 가장 높은 자유를 존중해 주셨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둘째, 죄의 본질에 대한 것이다. 죄는 욕하고 나쁘게 행동하는 외적인 것보다 훨씬 중요하고 근원적인 의미로서 '하나님을 떠난다'는 의미가 있단다. 하나님은 생명이고 하나님은 모든 좋고 올바른 것들의 주인이신 거 은진이도 알지. 그런데 뒤집어서 생각하면, 그런 그분을 떠난다는 건 죽음이고 모든 나쁘고 그릇된 것들만 알고 행하게 된다는 뜻이겠지. 이제 생각해 보자. 하나님이 정말 '나를 멀리 멀리 떠나라'는 마음을 가지고 계셨을까? 만약 그것을 좋아하신 분이라면, 어떻게 자신이 창조한 사람이 에덴 동산에서 살아가는 것을 보시고 '심히 좋다'고 말씀하실 수 있었을까? 말이 안되잖아. 하나님은 늘 선하시고 옳으신 분이시고 당연히 악하고 그릇된 말과 행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일텐데 그걸 좋아하실 리가 없잖아.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이 생명을 떠나 죽음으로 돌진하는 걸 즐기시는 심술쟁이 결코 아니거든.

아들: 하하하...아빠, 천사들은 순종만 하잖아요. 그런 왜 마귀가 되었어요?

아빠: 천사들~~ 그분들에 대해서는 아빠가 큰 관심이 없는데....ㅎㅎㅎ 성경을 보면 천사들은 로보트가 아니라 '뢰셔널 비잉'으로 분명히 묘사되고 있단다. 의지도 있고 생각도 하고 하나님 및 인간과 소통도 하는 존재라는 얘기다. 물론 하나님과 늘 대면하고 있다고 하니 하나님 면전에서 함부로 죄를 지을 수는 없겠지. 그러나 성경은 천사도 자신의 의지를 따라 타락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단다. 땅의 일들도 잘 모르는 우리의 지적 수준을 잘 아셔서 그런지, 하나님은 성경에 천사들을 비롯한 하늘의 상황을 자세히 보이지는 않으신 것 같다. 성경이 열어준 그 만큼만 보면 된다는 의미겠지. 그러니 너도 아빠처럼 그분들에 대해서는 너무 지나친 호기심 갖지 말거라.

아들: 와~ 재밋다. 아빠, 다 왔어요.

아빠: 오늘은 짧은 시간동안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네. 오늘도 겸손한 마음으로 공부 열심히 해. 학교에선 선생님이 대장인 거 알지? 아이라뷰~~

아들: 아이러뷰 투~~ 아빠! 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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