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16일 목요일

있는 그대로

비트겐슈타인 말마따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철학의 가장 중요한 숙제인 것처럼, 신학자의 가장 중차대한 숙제는 성경을 주어진 그대로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에 왜곡과 첨삭을 가하는 건 신경쓰지 않아도 능숙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성경을 그대로 둔다는 것은 우리의 본성 가장 깊숙한 곳까지 부인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자기를 부인하되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바까지 내려놓지 않는다면 말씀 첨삭에 아무런 거리낌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의 성향으로 깎이고 다듬어진 말씀을 마치 있는 그대로 두었다는 착각에 빠지지 않을 자가 누구일까? 본질상 진노의 자녀요 본질상 하나님과 원수였던 기질이 성경을 펼치는 순간 전혀 눈치채지 못하도록 활개치는 그 본성적인 현상을 감지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것을 잠잠케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며 죽으면 산다는 진리에 매달리는 거다.

일상을 벗어난 언어가 동원될 때에는, 성경 자체와 그 의미가 주어진 그대로 있도록 자기를 부인하는 차원에서 침묵으로 지나갈 수 없어서 부득불 어려운 언어들을 사용하는 식이어야 한다. 그 적정선의 주관성을 벗어나는 일이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만 증거하고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된 것을 증거하려 한다는 결론의 배후에는 앞서 언급된 고민들이 한번도 중단되지 않았다고 추측하면 바울의 속내를 많이 빗겨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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