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16일 목요일

믿음의 취득도 은혜이고 보존도 은혜이다

믿는다고 해서 믿는 게 아니다.
저마다가 믿는다고 생각되는 다른 기준이 있을 뿐이다.

예수님이 아버지께로서 온 것을
비유가 아니라 밝히 말하셨을 때에
제자들은 '지금은 밝히 말씀하니 우리가 믿나이다' 그랬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며 긍정하는 듯하면서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는 반전의 언설을 쏟으셨다.

바울은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는 아리송한 표현과 함께
지식은 교만하게 하는 속성이 있음을 경계한 바 있다.
안다고 여기는 것이 우리를 속이는 경우가 되겠다.
믿는다고 여기는 것이 우리를 속이는 경우는 왜 없겠나?
제자들의 모습이 가장 명료한 사례를 제공한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고 따름에 있어서 그들의 믿음에 어떠한 의문도
제기할 수 없는 예수님과 가장 밀착된 측근 중에 측근이다.
그런 그들이 믿었다고 하면 의심할 수 없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 각자의 확신을 믿음으로 보시질 않으셨다.
이런 게 힘든 부분이다. 나의 믿음조차 내가 믿지 못한다는 사실 말이다.

좀 안다고 교만할 거 없다.
믿음에 대한 불굴의 느낌이 들더라도 자만할 거 없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도 은혜요 기적이며
그 믿음이 보존되는 것도 은혜요 기적이다.

우리는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
물론 그 구원은 지속성과 영구성을 가졌다.
그러나 지속성과 영구성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이 생략되면
결정론과 같은 앙상한 공식 뼈다귀만 남는다. 대단히 큰 함정이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결코 잊거나 버리지 않으시는 것은 사실이나
하나님의 영원하고 견고한 은혜를 그런 방식으로 증거하고 있다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와 의미를 망각하면 '구원'이라는 미끼에 걸려
본질적인 것을 다 상실해도 그 이유나 실상을 알지 못하는 격이다.

하나님의 자존하심 외에 저절로 되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지각되지 않는다고 해서 원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믿음도 구원도 공식을 따라 한번 취득되면 상실되지 않는다는
기계적인 지식에 중독되지 말고 취득과 보존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
우리가 믿는 믿음은 누군가가 그것을 붙드시기 때문에 가능하고
그 믿음이 지금도 보존되는 것은 그것을 붙드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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