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16일 목요일

버미글리 Loci communes

케커만은 거룩한 신학과 참된 철학이 서로 상충되지 않는다는 테제로 유명한 개혁주의 신학자다. 철학과 신학의 관계성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고견을 가진 케커만이 논박에 있어서나 철학적 사안을 다룸에 있어서 그가 알고 있는 최고의 개혁파 정통주의 철학자로 지목한 사람이 바로 피터 마터 버미글리(Peter Martyr Vermigli, 1499-1562)다. 그는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아람어에 능통한 이탈리아 종교 개혁자다. 히브리어 경우에는 성경 뿐만 아니라 중세의 유대인 히브리어 주석까지 술술 읽어내는 수준이다. 링크된 교의학은 버미글리 사후에 로베르 마송에 의해 편저된 유고작 되겠다. 마송은 서문에서 버미글리 됨됨이를 진실한 경건, 다방면의 출중한 학식, 쾌활한 성품, 예리한 판단력, 아우한 품행을 두루두루 갖춘 인물로 묘사한다. 이런 버미글리 됨됨이를 경험하고 싶다면 Loci communes 보란다. 이를 시장성 고려한 판촉술의 일환으로 삐딱하게 보더라도 사실에 근거한 진술이다. 버미글리 신학 중 흥미로운 부분은, 철학이 이론보다 실천을 강조하는 반면 성경은 실천보다 관상에 무게를 둔다는 견해이다. 그 이유를 가시적인 행동보다 전인격적 관상이 진리 자체의 보다 무한한 차원의 분량을 담아낼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라 한다면 크게 빗나간 추측이 아닐 것이다. 

신학을 이론과 실천의 이분법적 구분의 틀 속으로 구겨 넣으려는 시도는 어떤 경우에도 실패한다. 우리에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으며, 주어진 것 중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무관하게 그냥 악세사리 용도로 주어진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를 사랑하라 하셨다. 인간성 전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겨야 할 수단으로 주님께 드려져야 한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우리는 신학을 하나의 학문이나 행동 강령이나 선동적인 이념으로 여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버미글리 Loci는 골격에 있어서나 진술 방식에 있어서나 칼빈의 '기독교 강요'보다 장엄한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고 이런 평가가 인격과 신앙과 신학적 활용에 있어서의 우열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신학관련 저술들은 하나님이 쓰시고 교회에 실질적인 유익을 주는 책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그런 성격의 책이 밖으로 드러난 유용성을 갖춘 책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비록 설교 강단과 상담하는 현장에서 곧장 사용될 수는 없더라도 그런 현장의 활동을 떠받치는 신앙의 등뼈를 형성하는 문헌들도 무용하고 불필요한 것으로 무시되진 말아야 할 것이다. 건강을 위해서는 채소도 먹고 고기도 먹어야 하듯이 믿음에 있어서도 신앙 성장기와 체질에 맞게 골고루 섭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버미글리 책은 고기류다. 딱딱하고 많이 씹어야 하는 문헌이다. 허나 고품격 신앙을 기대할 수 있는 책이 분명하니 일독을 권한다. 

이 책은 1583년 런던에서 Anthony Marten에 의해 영어로 번역 출간된다. Commonplaces (London, 1583). 그러나 마송 판본을 그대로 번역하지 않았다. 안토니는 마송을 성실하고 박학한 인물로 높이는듯 하면서 그의 판본보다 영역본이 낫다는 고도의 잘난척을 시도한다. 버미글리 주석에서 발췌하고, 출판되지 않는 문헌을 찾아내어 추가하고, 탁월한 설교와 서신까지 샅샅이 뒤져서 '완전한' 판본이 되었단다. '그런 신학의 문외한이 어떻게 이런 명품 교의학을 번역하고 출간할 수 있느냐'는 어떤 잠재적 불신을 고려한 탓인지, 안토니는 신학교육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먼저 자백한다. 그는 불신을 모면하는 일에만 만족하지 않고 실제로 히페리우스의 [신학연구 교범]까지 독파했다. 어쩌면 라틴어 초판보다 영역본 증보판이 더 중요한데 FREE DOWNLOAD 못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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