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16일 목요일

무스쿨루스의 Loci communes (Basilea, 1564)

교부학에 있어서 16세기 중반에는 칼빈보다 볼프강 무스쿨루스(Wolfgang Musculus)가 권위자로 통하였다. 그의 신학저술 전반에서 교부학 전문가의 위엄이 물씬 풍긴다. Loci communes가 이를 가장 극명하게 증거한다. 교부들에 대한 인용, 언급, 가르침이 대부분의 지면을 도배하고 있다. 즉 Loci는 은혜로 주어진 지성의 삽을 들고 교회사 저변에 흐르는 진리의 도도한 줄기를 마치 원광석 속에서 보석 캐내듯이 발굴하려 했던 몸부림의 산물이라 하겠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교부학과 개혁주의 신학의 짝짝꿍을 도모하는 내 논문의 주인공 역할을 그에게 맡기려고 하였으나 친구 Jordan이 이미 캐스팅해 버려 접었어야 했드랬다. 하야 지금도 조던을 보면 정체모를 불편함(^^)이....ㅎㅎㅎ

특별히 도덕적 해석에 대한 무스쿨루스의 각별한 애착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는 불링거, 오클람파디우스, 부써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특별히 불링거는 주석의 비유적인 강조점이, 오클람의 경우에는 풍유적 해석의 포괄성이, 부써는 도덕적 적용의 기초적인 접근법에 있어서 무스쿨루스와 개별적인 교감을 가진다는 파머(Farmer)의 입장에 나는 동의한다. 무스쿨루스가 스트라스버그에서 부써의 일을 도왔고 강의도 들었으며 그의 시편과 스바냐 주석 출간하는 일도 바지런히 도왔기 때문에 그의 '제자'로 부르는 것은 정당하다. 다만 주석에 있어서는 부써의 종속적인 모방이 아니라 약간의 독창성이 발휘된 발전 혹은 확장의 성격까지 '제자'라는 명분으로 간과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원한 진리는 새롭게 발명되는 게 아니다. 문명의 옷차림 스타일을 바꾼다고 해서 진리의 본질까지 바뀌지는 않는다. 인생의 본분을 달관한 전도자도 해 아래서 새로운 것이 산출되는 일은 없다고 선언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조언을 따라, '너희는...옛적 길 곧 선한 길...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는 태도를 견지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문명의 옷이 바뀌어 감에 따라 변화하는 비본질적 요소에 적응하는 것은 우리에게 요구되는 합당한 '성육신'의 내용이다. 시간과 공간을 생략해도 영원히 남을 진리지만 우리를 그런 문맥 안에 거하도록 창조하고 주관하고 계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 시점과 지점에서 하나님이 극도로 기념되길 원하고 계신다는 거다. 그래서 우리는 진리 자체를 아는 것과 그것을 우리 시대에 드러내는 일을 동시에 추구하되 앎과 삶의 하나됨을 통하여 이루어야 한다. 믿음의 선진들은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소홀하지 않고 생의 모든 것들을 마치 관제처럼 쏟아 부으며 그런 방식으로 죽기 위해 살았던 모범을 보였다. 무스쿨루스도 그 중의 한 인물이다.

클릭 Loci communes (Basilea, 1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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