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16일 목요일

Samuel Maresius의 Collegium theologicum (1662)

잔키우스, 우르시누스, 토사누스 가르침을 받았고 고마루스 제자요, 프랑스 네델란드 계통의 개혁파 정통주의 학자인 사무엘 마레시우스(Samuel Maresius, 1599-1573)는 1643년 스승 고마루스 후임으로 흐로닝엔 교수직에 오른다. 그는 엄밀한 고백적 개혁주의 입장을 고수했고 그런 이유 때문인지 격한 논쟁가로 소문이 자자했던 인물이다. 초기에는 푸치우스 거장과도 맞장을 뜰 정도로 날카로운 엄밀성의 날을 휘두르며 다녔지만 나중에는 그와 같은 배를 타고 이성사용 문제와 관련해서 코케이우스 및 데카르트 입장을 반박하는 투사로 변신한다. 그는 이성을 엄격히 제한하는 푸치우스 입장과는 달리, 자연신학 논할 때에는 이성의 주도적 사용을 인정했다. 그렇다고 성경이 배제된 자연신학 가능성의 무모한 옹호까지 가지는 않았다. 

마레시우스는 신학교 교수진 구성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네델란드 신학 교수들은 개혁주의 교회의 고백적 신앙을 엄격하게 고수하는 자여야 한다는 교수자격 요건에 대해서도 높은 기준치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나아가 신학교육 기관들을 하나로 통합하되 교수진은 6명에서 7명 정도면 족하단다. 학과를 통합하는 문제도 간단치 않은데, 교육 기관들을 통합하되 교수진을 무작위로 짤라내고 소수의 정예 멤버들만 남긴다는 것은 어디에서 나온 발상일까. 미움 꾀나 받았겠다. 밥그릇에 각별한 애착이 있는 동료들의 저항은 아마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으리라 생각된다. 

마레시우스 발상이 오늘날에 필요한 것일까? 무작정 구시대의 신학적 메카시즘 정도로만 치부할 사안은 아닌 듯하다. 신학교의 신학교육 기간이나 질이나 교과과정 내용에 있어서 상당한 개혁이 필요한 것은 상당부분 공감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지혜가 필요하고 질서가 필요하고 희생이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서두르지 말아야 하고 적정한 대화의 수순도 충실히 밟아야 하겠다. 방식과 절차도 문제지만, 우리가 내용적인 면에서 신학의 깊이나 균형이나 정통성에 있어서 어떤 수준까지 왔는지를 아프도록 엄밀하게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은 다른 어떤 절차보다 긴급한 수순이 아닌가 생각된다. 

신학교 개혁에 관심 있는 분들은 마레시우스의 Tractatus brevis de afflicto statu studii theologici in foedera Belgio(1672)를 참조하면 되겠다. 그런데 구글이 이 문헌 스캔에는 소홀했다. 다운받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알아서들 찾으셔야 되겠다. 아래에 링크된 문헌은 마레시우스의 신학이 집대성된 Collegium theologicum: sive systema breve universae theologiae (1659) 흐로닝엔 판본이다.  

Collegium theologicum: sive systema breve universae theologiae (Groningen,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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