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이유도 없이 미움을 당하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억울함을 당하고도 전혀 다른 문맥에서
보다 깊숙한 곳에 초점을 맞추면
억울함도 상처도 분함도 허상에 불과하고
오히려 역설적인 유익이 있음을 발견한다.
예수님의 삶은 억울함 투성이다.
하나님과 동등됨을 마다하고 사람의 몸으로 오셨으니
사람들이 환영의 쌍수보다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는
나사렛 촌사람 정도로 여겼던 것은 결코 이상하지 않다.
게다가 모든 사람들이 그 출신을 뻔히 아는데
'하나님의 아들이다,' '아버지와 하나다,' '위로부터 왔다' 등의
불경한 언사들을 거침없이 토하는 예수님의 행실을 보니
눈꼴이 시렵도록 불쾌하고 거북했을 것이다.
그들 편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삶이 억울함과 무관하고
오히려 심은대로 거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예수님이 아무런 연고도 없이 당하신 그 억울함을.
그저 우리의 죄 때문에 빌라도 법정에서
자신의 정결함와 거룩한 신분과 고결한 목적을
정직하고 당당하게 밝혀 판세를 뒤집을 수도 있었는데
'율법에 기록된 바'가 응하도록 피고의 정당한 권한마저
행사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속사정을
우리는 안다.
말씀이 응하도록 예수님이 보여주신 이 억울함은
어두움 가운데서 복음의 빛이 가장 화려하고 강렬하게
발휘되는 역설적인 방식임을 우리는 안다.
원수들이 까닭없이 자신을 미워하고 있다며 울분을 토하던
다윗의 억울한 삶이 복음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처럼
우리에게 혹 주어진 억울함은 복음이 복음답게 증거되는
높은 방편일 수 있음을 우리는 안다.
그래서 우리는 억울함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다.
부당한 대우가 범람해도,
그것에 휩쓸려서 생존에 위협이 가해져도,
정직하고 당당한 발론의 일성을 지르지 않고
오히려 복음이 제대로 증거되는 열매를 기대하며
그저 말씀이 응하도록 묵묵히 감사와 기쁨으로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께 의탁한다.
복음은 그런 것이라고 보여주고,
우리의 운명을 사람이 어찌하지 못함을 보여주고,
예수님의 카피하는 삶의 역설적인 희락을 맛보여 주는거다.
칼을 뽑으면 타인의 무장만 두텁게 만든다.
그러나 십자가를 붙들면 영혼의 무장까지 해제한다.
이런 종류의 자발적 무장해제,
당해 보지 않으면 그 맛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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