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11일 토요일

Walter Ong의 라무스 이해

1. 사용(Usus)에 대한 라무스의 일반적인 의미는 실천이고 특별한 의미는 학생들의 교실 실습 혹은 연습이다. 당시 논리학 개혁의 위기는 그의 초기 교수생활 속에서 가장 긴급한 화두였다.

2. "나의 목적은 Organon의 논리학 책들을 박학에 수종드는 것(ad eruditionis usum)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3. 아그리콜라는 발견 부분에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라무스는 한발짝 더 나아간다. 판단까지. 판단의 자유는 마음의 평정을 통하여 배양된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판단은 라무스의 논리에 있어서 후반부 절반을 차지한다. 그러나 아그리콜라는 이것을 간과했다. '소크라테스적 방법론'은 라무스적 판단에 해당된다. 이어지는 질문을 통해 우리의 내적 무지와 우매함을 드러내는 소크라테스 방법 혹은 산파술은 라무스의 이론이나 실천에는 발견되지 않는다.

4. 라무스의 논리에서 인간의 증언은 발견에 속하는 것이고 여기에 판단이 이를 보충한다.

5. '아리스토가 말한 모든 것들은 상기될 필요가 있다 혹은 거짓이다 혹은 잘못이다 혹은 인위적인 것이다 혹은 서로 무관계한 혹은 순일하지 않다(quaecumque ab Aristotele dicta essent, commentitia esse)'라는 반 아리스토 테제는 라미즘 연구의 공식적인 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소설이나 연극에 불과하다. 옹은 이렇게 번역한다.
Quaecumque ab Aristotele dicta essent, commentitia esse: All the things that Aristotle has said are inconsistent because they are poorly systematized and can be called to mind only by the use of arbitrary mnemonic devices. 아리스토가 말한 모든 것들은 일관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조직적인 형태의 빈곤에 처했으며 임의적인 기억력의 활용을 통해서만 마음에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6. 지성사 속에서 라무스의 가장 궁극적인 기여도는 그의 논리학에 있다. 라무스 자신은 자기의 논리학이 수사학과 하나도 물들지 않았다고 이해했다.

7. 라무스는 종교를 하나의 기술 혹은 예술(ars)로 축소한다. ars bene vivendi. 문법: ars bene loquendi, 수사학: ars bene dicendi, 변증학: ars bene disserendi, 기하학: ars bene metiendi.

8. 라무스의 논리는 모든 지식의 열쇠이며 그로 하여금 일반적인 학문들을 넘어 신학과 의학으로 인도한다.

9. 라무스는 결혼하지 않았다. 자신의 애매한 성직자 신분, 즉 일상적인 시민법에 대한 면책특권을 누렸다. 이 특권은 대학교의 학생들과 교수들과 결부된 것이었다.

10. 라무스 당시의 교과과정 중심에는 아리스토 철학이 권위로 인정되고 있었다. 그러나 라무스는 아리스토 및 그의 추종자들 견해를 혹독하게 공격했다. 교수진은 페닉에 빠졌으며 라무스가 교과과정 전체를 뒤집고 휘저어 놓았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라무스는 거대한 저항에 부딪혀야 했다. 라무스의 책은 금서조치 되었으며 교수권도 박탈을 당하였다.

11. 라무스 당시의 라틴어 전문가들 견해는 다음과 같았다. 즉 라무스는 탁월했다. 키케로 외에는 라틴어 웅번에 라무스를 필적할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는 Petrarch와 에라스무스 및 그의 동료들은 물론이고 교부들의 라틴어 실력도 능가했다.

12. 라무스 당시의 physics는 그냥 물리학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물리학, 화학, 점성학, 천문학, 생물학, 해부학, 심리학, 신경 심리학, 분류학 및 형이상학 일부까지 혼합된 어떤 학문을 일컫는 말이었다.

13. 논리학에 대한 라무스의 개념은 키케로로부터 어거스틴을 거쳐 전수된 중세 수사학적 유산의 일부라고 옹은 진단한다.

14. 라무스는 Organon을 읽으면서 아리스토 추종자가 모은 아리스토 논리 문헌들의 때로는 중복되고 혼돈스런 묶음임을 확인하고 그거에 질수를 부여해야 한다는 통찰력을 얻는다.

15. 라무스는 거짓된 스콜라적 견해들에 속았다고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 아리스토는 평정한 판단의 대단한 애호가였다. 라무스는 말한다. "나는 갈렌과 플라톤과 아리스토를 나에게 주사무수한 파도와 폭우에서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그들의 이름으로 감사를 드릴 수 있다."

16.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