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무스는 간단하지 않은 인물이다.
빠리대학 동료들은 그를 참을성 없는 인간으로 이해했다.
그들 중에 다소 온화한 성품의 동료는
라무스가 외고집의 정신착란 증세까지 보이며
사악한 범죄형 인간으로 보기도 했단다.
베자는 라무스를 '가장 잘 정돈된 질서를 발칵 뒤집을 준비가
늘 되어 있는 사람(homo ad turbanda optima quaeque comparatus)로 이해했다.
도대체 이런 사람에게 어떤 선한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러나 현존하는 최고의 라무스 전기를 저술한 찰스 웨딩턴은
자신의 <라무스 전기(Ramus, sa Vie, ses Ecrits, et ses Opinions, Paris, 1855)>에서
라무스를 절세의 영웅으로 묘사한다. 웨딩턴의 눈에는 라무스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선지자로 보였거든.
웨딩턴에 따르면, 라무스는 르네상스 표준을 담지한 자로서
중세의 어두움을 배격하고, 편협한 권위에 눌린 이성의 결박을 풀어주고
카톨릭의 억압에서 양심의 자유를 실현한 인물이다.
진리와 자유의 챔피언인 라무스는 결구 인문주의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
장렬한 죽음을 맞이한 순교자가 되었다고 웨딩턴은 진술한다.
웨딩턴은 라무스의 건덕이 그가 창안한 것보다 그가 제거한 것과 관련된 것으로 보았다.
즉 라무스는 미신의 속박과 고답적인 권위와 교조적인 편협을 깨뜨리며 유럽의 정신을
자유롭게 했기 때문이다.
웨딩턴과 달리
<라무스, 방법론, 담론의 퇴화(Ramus, Method, and the Decay of Dialogue, 1958)>를 저술한
월터 옹의 눈에는 라무스가 서구의 지성적 유산을 사춘기 학생의 지적 수준으로 퇴화시킨
다소 야만적인 학교의 교사일 뿐이다. 그는 라미즘의 확신이 그 내용과는 무관하게
유럽을 휩쓴 인쇄술과 코드가 맞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란다.
이분법과 도표식 분석은 인쇄용 글자와 교합하기 딱이었기 때문이지.
비록 옹은 라무스를 삐딱하게 보며 그의 결함을 지적하고 있지만
광범위한 논리학의 역사와 라무스 저작의 집요한 탐구에 기초한
라무스적 논리와 방법에 대한 학문적 연구로서 단연 표준적인 문헌으로 자리매김 한다.
웨딩턴과 옹의 연구는 16세기 프랑스의 보다 넓은 정치, 경제, 사회, 종교라는 문맥을
간과하는 심각한 실수를 범했다고 비판하는 인물이 최근에 등장한 학자가 있다.
제임스 스칼니크(James Skalnik)의 <라무스와 개혁(Ramus and Reform)>이란 책에서
라무스는 능력주의 사회에 대한 인문주의 공론가(the humanist ideologist of meritocracy)다.
그의 유년기는 노력과 재능과 배움이 존중되는 사회적 체계 속에서 지나갔다.
이런 경험은 자신만이 아니라 자기의 재능을 발굴하고 발전시킬 기회가
높은 등록금과 난해한 언어의 장벽과 학문의 불필요한 복잡성 때문에 박탈된
프랑스의 모든 서민들도 그런 체제적 유익의 수혜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교육을 단순하고 저렴하고 신속하게 받을 수 있도록 방법론의 구상이 절박했다.
라무스 방법론은 거기에 지극히 적합한 것이었다.
교수직을 얻었으나 개혁의 한계를 직감하고 정계까지 뛰어드는 과감한 시도를 하였지만
그의 이상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의 교육 방법론은 지금도 연구의 대상으로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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