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4일 토요일

라무스 연구 3

라무스 논리학의 탁월성은 유효성과 유용성에 있다.
목적성 없는 훈련은 없다. 신학도 그렇다는 것이 알스테드 입장이다.
그는 모든 학문의 유일한 목적이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 결여하고 있는
어떤 것을 보충해 줌으로써 인생의 한 측면을 완전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실천이 수반되지 않는 이론은 죽었다.
같은 맥락에서 행함이 없는 신앙도 죽은 것이다.

알스테드는 죽기 직전까지 실천(praxis)을 외쳤다고 한다.
실천은 모든 학문에서 소중하게 고려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면서.
'나는 활용(usus)을 네 모든 저작의 북극성으로 간주해 왔다'는 말도 주저하지 않았다.
심지어 형이상학 경우도 우리의 삶을 정돈하고 우리의 도덕성을 향상하는
수단적인 가치에서 그 정당성을 얻는다고 했다.
당연히 심오한 차원의 배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가 가시였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라무스에 대한 옹의 뾰족한 지적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던 것 같다.

지식은 무엇인가?
피스카토르는 라무스의 정신을 존중하고 있다.
그는 라무스 방법론이 기독교 교육에도 유용함을 발견한다.
그래서 언어의 연구, 말하기의 기술, 기독교 교리문답 등에 적용했다.
난해하고 장황한 작가들의 명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윤리와 정치와 역사와 물리에는 단순한 용어와 표현이 필요했다.

'지식은 그 자체를 위해서 추구되지 말아야 하고 그것의 유용성을 위해야 한다.'
'지식은 우리가 그것을 활용하지 못한다면 무용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교육의 목적은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다.
이런 정신을 따라 교과과정 규정은 이렇게 강조한다.
'신학, 물리, 윤리, 역사, 정치의 지식을 취하기 용이한 책들만 교실에서 읽혀져야 한다.
교양을 다루는 문헌들은 고대의 작가들이 아니라 현대의 작가들에 의해 제가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라무스 정신과 방법론은 모든 사람에게 환영을 받지는 않았다.
높은 등록금을 후원하는 자들은
보편적인 학습(commonplace learning)이 아니라 격조 높은 박학을 추구할 수 있었다.
보다 고품격의 목적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거칠고 손쉬운 라무스의 공구함은
필요하지 않았다. 보다 기술적인 방편과 수단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미즘의 대중적 유용성은 아무도 무시할 수 없었다.

법원의 일상적인 문제를 처리하고, 대중적인 설교를 하고 학교를 운영함에 있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세련된 논리와 사카우본(Casaubon) 및 스칼리거(Scaliger) 같은
학자들의 최첨단 문헌학은 어울리지 않았고 제한적인 용도만 제공할 뿐이었다.
법률가와 행정가와 조사관과 교사들과 설교자와 목회자가 직무를 수행하고
종교개혁 정신을 살리기 위해서는 빠르고 확실하고 저렴하고 유연하고 폭넓고
실천적인 교육이 동원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라무스를 환영한 사람은 선제후고, 그를 무시한 사람은 교수였다.
심지어 제네바에서도 시의회는 라무스를 그에 대한 베자의 혐오에도 불구하고 환영했다.
마르부르크의 라미즘 도입도 빌헬름 4세의 후원은 받았으나 교양학부 교수진의 차가운
냉대를 받아야만 했다. 라이프찌히 철학부 교수진은 유일한 라무스적 교수 한 명을
해직하려 했으나 삭소니의 선제후 크리스티앙 1세는 그를 보호하기 위해 관여했다.

유용성과 효용성이 뛰어난 라무스의 교육방식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느끼는 지역의 제후들과 교육감의 주도적인 후원을 받아
체계적인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통치자의 반대를 무릎쓰고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다.
학생들도 라무스를 환호했다. 하이델베르그 학생들은 윤리학 교수직의 공석을
라무스로 매꾸어 달라는 항소를 올리기도 했고 제네바 학생들은 라무스에 대한
베자의 의심스런 눈초리를 알면서도 라무스를 찬양하고
그의 강연이 원만하게 진행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세력들을 비판하는 벽보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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