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10일 금요일

바리새인 및 사두개인 기원

이것에 대해 정확하게 언급한 역사적 문헌은 없는 것 같습니다. 바리새인 분파에 대해 언급한 최초의 현존하는 문헌은 유세푸스 저작 Antiquitates Iudaice인데, 바리새인 분파는 책의 제13권 7장 9항에서 세 개의 유대인 분파들 (바리새파, 사두개파, 엣세네파) 중에 하나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요세푸스 문헌에는, 당시의 집권자 요하네스 힐카누스(Johannes Hyrcanus, 135-106)가 시민적 권세와 종교적 권세를 모두 장악한 것에 대해 바리새인 분파는 적개심을 품었으며, 급기야 엘리에셀이 히르카누스 출생에 대해 그의 어머니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집정시 일개의 포로였을 뿐이라는 불쾌한 지적을 하자 히르카누스는 사두개인 분파로 ‘당적’을 옮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바리새인 분파는 정치적 성향보다 종교적 성향을 더 강하게 띤 단체였고 대제사장 직분은 정통 바리새파 출신이 취하기를 원하였고 백성의 종교적 삶을 통제하려 했습니다. 반면 사두개인 분파는 대단히 정치적인 현세주의 단체였고 히르카누스의 입당을 환영하며 정교일치 문제에 대해서도 특별한 거부감을 보이지 않습니다.

역사적인 면에서 보자면, 구약 끝부분의 이스라엘 역사에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 갔다가 다시 본토로 돌아온 자들 중에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활동한 분파들이 많이 생겨 났습니다. 무력으로 저항했던 세력들도 있지만 그들 중에는 율법의 원문을 읽고 가르쳤던 구약의 학사요 선지자인 에스라의 업무를 계승한 서기관들 및 그들을 지지했던 사람들로 구성된 ‘하나님의 충성된 자들’이란 의미의 하시딤(Hasidim) 분파가 있었는데 이들은 주전 167년에 안티오쿠스 4세의 헬레니즘 토착화 정책에 반대하는 마카베오 반란이 일어나자 무저항을 주장하며 마카비를 떠나 오직 율법을 곧이 곧대로 지키기로 맹세한 하베림(Haberim) 분파를 만듭니다. 요세푸스 견해는 바로 하베림이 바리새인 분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에스라와 느헤미야 계보를 중시하며 율법(Mishina)의 준수와 거룩히 구별된 생활을 강조하고 이교적인 불순과의 단절을 위해 싸우며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적 독립과 회복을 도모했던 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연 구약 율법의 연구와 조상들의 전통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영혼의 불멸과 부활 및 내세를 믿었으며, 예정론도 믿었으나 행위로 말미암는 구원을 강조했고 율법의 내면적인 뜻보다 외면적인 준수를 더 중시하여 예수님의 혹독한 책망을 받기도 했습니다. ‘바리새인’ 단어의 히브리어 원문은פְּרוּשִׁים 이며 ‘분리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φαρισαῖος(분리된 자)라는 헬라어로 번역이 됩니다.

사두개인 분파(צְדוּקִים)는 솔로몬 시대에 첫번째 성전에서 대제사장 직분을 수행한 사독(צדוק)의 계보를 잇는다고 주장한 분파로서 제2성전 시대에 왕성한 활동력을 보였는데 이들은 주로 유대인 사회의 경제적 정치적 상류층을 형성한 자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기원을 따지자면 솔로몬 시대의 사독까지 소급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성문화된 율법을 존중하긴 했으나 구전을 거부했고 부활이나 천사나 영생이나 영혼을 믿지 않았으며 현실 정치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부인하고 인간의 절대적인 자유의지를 믿으며 성전을 중심으로 활동하긴 하되 주로 정치적인 성향을 보입니다.

정리하면 두 분파의 정확한 기원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기원전 2세기를 중심으로 활동을 하였고 이름이 거명되며 요세푸스 기록에 의존하여 막연하게 더듬을 수 있을 뿐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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