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교육 혁명가 페트루스 라무스의 절친 오마르 탈론(Omar Talon)은 Praefationes에서 이렇게 말했다.
'플라톤의 문헌에서 나에게 유용하고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면, 그것을 수용한다. 에피쿠루스 정원에 선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보다 좋은 것을 판다면, 그의 것을 구매할 것이다. 제노의 상품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것보다 용이하게 팔리는 것이라면, 아리스토텔레스를 떠나 제노의 가게로 이동할 것이다. 철학자의 백화점에 시판되는 모든 것이 공허하고 무용한 것이라면 나는 어떠한 것도 구입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알스테드는 Cursus(1620)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소크라테스도 나의 친구이고, 플라톤도 나의 친구이며, 아리스토텔레스도 나의 친구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뛰어난 나의 친구는 진리이다. 플라톤은 고전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진리는 훨씬 더 고전적인 것이다.'
모든 좋은 것들은 빛들의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전부 취하고 하나의 거대한 질서 속에서 통합하려 했던 16세기 및 17세기의 절충주의 경향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상에서 무의미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세상에 무가치한 것은 하나도 없다. 지어진 모든 것들은 어떤 식으로든 협력하여 선을 이루고야 마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속에서 적당한 때에 아름답게 지어졌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해 무례하고 성급한 비판의 입술을 여는 것은 삼가해야 하겠다.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우연이 아닐 것이다. 모순과 부조리는 우리로 하여금 상식의 지표를 뜯어내고 보다 깊은 심연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초청장은 아닌지 모르겠다. 하나님의 신비로운 속성까지 소급해 들어가지 않으면 풀리지도 않고 그로 인한 답답함은 결코 해소되지 않을 것이니까. 하나님의 영광과 신성이 그의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인다는 말씀은 만물과 역사의 어떤 계시성을 의미하는 동시에 자연에서 누리는 안식은 하나님의 영광과 신성을 누리는 안식의 서곡일 뿐이며 그래서 초청장 기능을 가졌다는 의미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든다.
"모순과 부조리야 덤벼라...하나님의 가장 깊은 속성 속으로 파고들어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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